조선후기 과시(科詩)를 적은 시권(試券)으로 성적은 ‘삼중(三中)’이다.
시권은 과거와 성균관·사학의 학교 시험, 백일장 등 각종 시험에서 작성된 제술시험의 답안지를 가리킨다. 답안을 작성하는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는 시지(試紙), 명지(名紙), 명저(名楮)라고 일컬었는데, 답안이 작성되면 문서의 한 형태로 파악하여 시권이라고 일컬었다.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와 공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를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권에 수록하는 정보는 오늘날의 시험 답안지와 유사하다. 시험 종류나 시기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답안을 작성한 사람의 인적 사항, ‘서제(書題)’라고 불린 시험 문제와 답안, 답안 제출 순서인 자표(字標), 성적이나 등위 등이 공통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 장의 시권에는 답안 뿐 아니라 응시와 채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저 ‘사천(四天)’은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 시권을 거들 때 열 개씩 천자문 순서로 묶었는데, 네 번째 묶음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의 제목은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한나라 혜제(惠帝) 때에 소하(蕭何)를 이어 상국(相國: 재상)이 된 조참(曹參)은 술을 매우 즐겨 마셨다고 한다. 상사(相舍: 재상의 관사)의 후원(後園)이 이사(吏舍: 아전의 관사)와 가까웠는데 이사에서 아전들이 날마다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하였으므로, 조참을 수행하던 아전이 이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것을 청하며 일부러 조참을 후원에 나가게 해서 이 노랫소리를 듣게 하였는데, 조참은 도리어 술을 가져오게 하더니 자리를 펴고 앉아서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서로 창화(唱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시는 칠언시 장편 36구로 격구(隔句)에 압운(押韻)을 하였는데, 압운한 글자는 제목에 나오는 주(酒)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