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조선후기 과시(科詩)를 적은 시권(試券)이다. 성적은 ‘이하(二下)’를 받았다.
시권은 과거와 성균관·사학의 학교 시험, 백일장 등 각종 시험에서 작성된 제술시험의 답안지를 가리킨다. 답안을 작성하는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는 시지(試紙), 명지(名紙), 명저(名楮)라고 일컬었는데, 답안이 작성되면 문서의 한 형태로 파악하여 시권이라고 일컬었다.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와 공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를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권에 수록하는 정보는 오늘날의 시험 답안지와 유사하다. 시험 종류나 시기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답안을 작성한 사람의 인적 사항, ‘서제(書題)’라고 불린 시험 문제와 답안, 답안 제출 순서인 자표(字標), 성적이나 등위 등이 공통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 장의 시권에는 답안 뿐 아니라 응시와 채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목은 당세의 현자와 이름난 제후를 초청하여 정치를 맡기는 것은 바람을 타고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이 쉽다는 뜻이다. 제목 옆에는 ‘시(詩)’라고 작게 적어서 이 글이 과시(科試)라는 것을 보였다. ‘삼천(三天)’은 시권을 거둘 때 ‘천자문(千字文)’의 순서로 10개씩 묶어 번호를 매기는데, 이 시권은 ‘삼천(三天)’, 곧 20에서 30개 사이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시는 7언시 장편 36구로 이루어져 있고, 격구(隔句)에 압운(押韻)을 하였는데, 이 운자(韻字)는 제목에 있는 풍(風)자를 사용한 것이다. 성적은 ‘이하(二下)’를 받았고 본문에 있는 ‘칠웅(七雄)’이나 ‘육국(六國)’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당시의 현실정치를 비유한 것이다. 또한 ‘인뢰(人籟)’, ‘지뢰(地籟)’, ‘대괴일허(大塊一噓)’ 등 『장자』에 나오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시권은 조선후기 지방에서 시행한 향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