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31년에 춘천향교(春川鄕校)에서 전주향교(全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문서의 작성시기는 ‘공부자탄강이천사백팔십이년(孔夫子誕降二千四百八十二年)’이라 적었는데 이는 공자 탄생 2482년이 된 해를 말한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므로 1931년에 작성된 통문임을 알 수 있다.
회문(回文)이라고도 부르는 통문은 조선시대 민간에서 어떤 사실 및 주장을 공개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통문을 발급한 주체는 개인과 단체 등 매우 다양하다. 서원・향교・문중・유생・성균관 등에서 주로 연명(連名)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기재하며, 회원에게 회람시키거나 타인 및 타 단체에게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동의 및 특정 행동에 동참하도록 요청하기 위해 통문을 작성하였다.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1931년으로 이를 통해 통문 형식의 문서는 일제강점기에도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의 내용은 전(前) 참서관(參書官) 해강(海崗) 김용규(金容奎)의 덕행(德行)을 함께 포양(褒揚)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용규는 동창(東窓) 김준손(金駿孫)의 후손으로 천성이 따뜻하고, 태도와 행실이 청렴하였다. 은거한 후에도 항상 학문에 힘썼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특히 깊어 진실로 군자(君子)라 할 수 있으니, 멀고 가까움을 떠나 포양하는 것에 함께 하자고 하였다. 또한, 춘천향교 직원(直員: 현재는 전교) 박노선(朴魯宣), 장의(掌議) 홍종각(洪鍾珏), 박승익(朴承翼)의 이름으로 보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