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정유년(丁酉年) 2월 4일에 영암후인(靈巖後人) 박주국(朴株國)이 사돈집에 보내는 혼서이다.
조선의 혼례는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을 참고하여 시행하였는데,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로 구분한다. 의혼은 중매자가 양가를 왕래하며 혼사를 의논하는 단계로, 신랑 측에서 청혼서를 보내면 신부 측에서는 허혼서를 보내며 청혼에 응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납채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내는 것이고, 이에 신부 측에서는 혼인날을 정해서 신랑 측에 택일단자(擇日單子)를 보내는데 이를 연길(涓吉)이라 한다. 납폐는 신랑 혼주가 신부 집에 폐백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대례는 혼인 예식을 말하며, 전안례(奠鴈禮), 교배례(交拜禮) 등으로 진행된다. 우귀는 조선만의 풍습이며,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가서 며느리로서 치르는 예식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박주국은 자신의 장자인 박희삼(朴凞三)과 혼인을 허락해주어 감사하다며 편지를 시작하였다. 이어 납폐의 예를 행하오니 특별히 살펴주실 것을 청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 혼서는 봉투에 담아서 보내나 이 문서의 경우 봉투는 현전하지 않고 본문을 적은 편지만 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