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조(李源祖) 간찰(簡札)
- 등록번호
- 00016403
- 생산일자
- 1834.12.19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이원조(李源祖)
- 수집처
- 김현식
- 소장자
- 춘천학연구소
- 내용
-
1834년 12월 19일에 초천(草川)의 이원조(李源祖)가 외동(巍洞)에 사는 이참사(李參奉)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편지의 작성시기는 '대행대왕(大行大王)'과 '익묘(翼廟)'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서두에 기재된 '대행대왕'은 왕이 죽은 뒤 시호를 올리기 전에 높여 이르는 말이다. 또한 '익묘'는 순조(재위: 1800~1834)의 아들인 효명세자(1809~1830)를 문조로 추승한 일을 이른다. 따라서 편지의 작성시기인 갑오년(甲午年)은 1834년이다. 이원조는 서두에서 나라의 위태로움이 지난 경신년에 비해 더욱 심한 상황인데, 자신이 이를 보답할 길이 없어 자신도 모르게 벽을 돌며 서성이거나 지붕을 바라보며 근심을 한다고 하며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이어 이참봉에게 대대로 국록을 받은 집안의 선비로서 지금 요양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칠실(漆室)로 자처해서는 아니 되고, 더욱이 직책을 내려왔다고 해서 어찌 보통 관료로 자신의 책임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냐며 꾸짖었다.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아내가 죽어 같이 따라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하지 못해 할 말이 없다 하고 감조관은 어느 도감의 직책이냐고 물어보았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부여의 숙부님이 함께 서울에 오셨다고 하는데 정말 오셨는지 물어보면서 편지를 따로 쓰지 못하였으니 이 편지를 함께 보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어서 부여 숙부의 동생이 편안하고 청명한 자연을 만끽하기 바란다고 하며 손해가 없지만 이로움도 없으니 한 번 웃게 된다고 하며 나머지는 다음에 한다고 하였다.
가로45.9cm, 세로35.4cm
- 사용안내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춘천디지털기록관
상업적 사용·수정·재배포는 저작권자 동의 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