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12월 22일에 류중악(柳重岳)이 서로(西路)의 여러 곳에 있는 문인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류중악은 화서학파의 문인으로 김평묵(金平默), 류인석(柳麟錫)과 교유하였다. 그는 현재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고치기 위해서는 중암 김평묵의 문집과 화동사합편강목(華東史合編綱目) 두 책을 간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암선생은 공자, 주자 사상을 잘 반영하였기 때문에 이 책들을 간행하여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송나라 의흥의 오진사(吳進士)는 호담암(胡澹庵)의 척화소(斥和疏) 한편을 간행하였으나 만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며 만약 오늘날에 오진사가 이 일을 만났다면 사양하지 않고 할 것이라며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문집의 간행에 대해서는 연천(肅川)의 차상사(車上舍)가 중전집(重前集)을 맡았고 양서의 사우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았으며, 해주의 오사상(吳上舍)와 선천의 박소산(朴小山)은 합편사(合編史) 맡고, 멀리서 춘천의 김도사(金都事)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였다. 더욱이 이 일은 의암(毅菴) 선생에게서 나온 것인데 의암의 말을 듣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이 일을 끝내기를 기대한다고 하고 다시 한번 이 일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매우 위급하고 쓰러지며 분주한 가운데서라도 한 가지 생각조차 조금이나마 나태하지 말고, 이제독(李提督)이 진중에서 강학하던 마음과 노력으로 한다고 하면 일을 끝마칠 수 있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끝으로 친구인 박화남(朴華南)이 이 일로 자신의 편지와 함께 가니 살펴달라고 하였고, 상중에 있는 박태암(朴泰庵)과 한송(寒松)을 지난번에 잠깐 보고 이별하여 그립다는 말을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류중악의 자는 백현(伯賢)이고, 호는 항와(恒窩)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직접 배웠으며, 김평묵(金平默)도 스승으로 섬겼다. 집안의 형인 류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조카인 의암 류인석(柳麟錫)과 동문으로 화서학파에 속한다. 류중악은 직접 의병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류인석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류중악은 의리에 옳지 않은 것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구차스럽게 따를 수 없다며 변복령이나 황제의 칭호, 광무 연호 등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