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0년 4월 13일 류중악(柳重岳)이 선생에게 보낸 간찰이다. 류중악(1843~1909)의 생몰연도를 통해 문서의 연도인 경오년(庚午年)이 1870년임을 알 수 있다. 수신인에 대해서는 이름을 기재하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선생이라고 한 것을 통해 보면 직접 배웠던 이항로(李恒老)나 스승으로 모신 김평묵(金平默), 혹은 집안 형인 류중교(柳重敎) 등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본문을 보면 중악은 먼저 선생께 편지를 올린다고 하며 부인의 성사(成事)가 어느덧 지나가니 애통하고 사모하는 정을 어떻게 견디는지 여쭈며 슬픔과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어서 저번에 만나고 헤어질 때 아픈 목이 근래에 차도가 있고, 오고 간 사람들의 말로는 회복했다고 듣긴 했지만 정확하지 않아 안도감과 근심이 교대한다고 하며 부모님의 건강을 여쭤보았다. 자신은 부모님 걱정이 편한 날이 없어 걱정스럽고, 하고 있는 공부도 번잡함에 의해서 방만해졌다고 하며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류중악은 선생께서 이전에 오라고 하신 말씀을 여러 차례 직접 들었으나 아버지께서 이별을 안타깝게 여기고, 번잡한 일이 있어 바로 달려가지 못하니 죄송하다 하며, 10일 쯤 지나서 갈 계획을 세웠지만 확실한 기약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인편이 바빠서 이만 줄이고 편지를 보낸다고 하며, 선생께서 슬픔을 절제하고 몸을 돌보아 후학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바란다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류중악의 자는 백현(伯賢)이고, 호는 항와(恒窩)이다. 화서 이항로에게 직접 배웠으며, 김평묵도 스승으로 섬겼다. 집안의 형인 류중교의 문하에서 수업하기도 하였으며, 조카인 류인석(柳麟錫)과 동문으로 화서학파에 속했다. 류중악은 의병항쟁기 춘천의병의 기획자,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의리에 옳지 않은 것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구차스럽게 따를 수 없다며 변복령이나 황제의 칭호, 광무 연호 등을 거부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