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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류중교(柳重敎) 간찰(簡札) (3)
등록번호
00016399
생산일자
1878.06.14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류중교(柳重敎)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1878년 6월 14일 류중교(柳重敎)가 류자운(柳子雲)・류윤화(柳允和)・류백춘(柳伯春) 등 교동(校洞) 서사(書社)의 여러분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서의 작성연도인 무인년(戊寅年)은 류중교(1832~1893)의 생몰년을 통해 1878년임을 알 수 있고, 류중교가 자신을 '족생(族生)'이라고 한 것을 통해 수신인과 류중교와의 관계는 친척임을 알 수 있다.
류중교는 국상에 모두 애통해하는데 인편으로 주신 편지에 형편이 모두 좋고 공부에 각각 진전이 있다니 매우 위로가 된다고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기일을 맞아 깊은 산중에서 곧바로 돌아가는 것을 바빠서 말하지 못했고, 약을 구해 병을 치료한다는 계획도 불행한 일을 만나 전혀 힘쓰지 못한 상태라고 하였다. 그래도 기꺼이 책을 끼고 이곳에서 한두 명의 사류(士流: 선비들)와 아침저녁으로 시절을 토론하며 마음을 풀어 버리고 있다고 하였다.이어 자신이 돌아가는 날에 짐을 꾸려 산을 내려 갈 것인데 무더위가 조금 누그러진 날을 기다렸다가 다음 달 10일에서 15일에는 떠나지 않을 것이며 성집(聲集)이 먼저 돌아가 형편을 전할 것이라며 편지를 마쳤다.
류중교의 본관은 고흥이고,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있었으며, 이항로가 사망한 이후에는 김평묵(金平默)을 스승으로 섬겼다. 류중교는 조선책략의 내용에 반대하여 김평묵과 함께 위정척사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성재집이 있으며 제자는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이다.

가로43.7cm, 세로24.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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