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응 초상화
- 등록번호
- 00023838
- 생산일자
- 2019.03.01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신대엽
- 수집처
- 의암류인석기념관
- 소장자
- 의암류인석기념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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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는 춘천문화원 의암류인석기념관에서 2019년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의병) 19명을 선정하여 춘천 거주 신대엽 화백이 전통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진응李晉應
-생몰년도: 1847.09.19.~1896.02.17.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1
-훈격: 애국장
이진응은 의병장 습재 이소응의 종형으로서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춘천에서는 1890년 1월 20일 류중락·이만응 등이 중심이 되어 일대의 유림과 백성 천여 명이 춘천부에 모여 습재 이소응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이때 이진응은 아우 경응과 함께 입진한 것으로 보인다. 습재의 춘천 의진은 각지로 격문을 보내어 적극적인 항일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정부에서 조인승을 춘천부 관찰사 겸 선유사로 파견하였으나 춘천의진은 그를 왜노로 간주 처형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조정에서는 1개 중대의 병력을 춘천으로 파견하였다. 이로써 춘천의진에 대한 관군의 공세가 급격해지자 훈련이 부족하고 전술·전략에 익숙치 못한 의진은 쉽사리 붕괴되었다. 습재는 병력 증강을 위해 지평군수 맹영재를 찾아 협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2월 17일 제천의 의암 류인석의 의진으로 들어가 합세하게 되었다.이에 이진응은 춘천 의진을 인계받아 주장이 되었다. 이때 관군과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 의진을 사수하다가 끝내 실패하고 순절하였다. 이진응의 사후에는 그의 아우 경응이 춘천의진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이를 계속 지휘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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