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악 초상화
- 등록번호
- 00023828
- 생산일자
- 2019.03.01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신대엽
- 수집처
- 의암류인석기념관
- 소장자
- 의암류인석기념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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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는 춘천문화원 의암류인석기념관에서 2019년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의병) 19명을 선정하여 춘천 거주 신대엽 화백이 전통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류중악柳重岳
-생몰년도: 1843.11.12.~1909.05.23.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류중악은 1868년부터 1875년까지 화서·중암·성재의 문하에서 주자학을 공부한 유학자이다. 일찍이 이근원·류인석과 함께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다. 1895년 11월 단발령이 내려지고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 되자 지평 용문산 아래에서 류중악은 류홍석·이근원·이소응 등과 같이 회동하여 거의할 것을 결의하고 류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1896년 1월 류중악은 이소응과 함께 춘천에서 수천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의암衣岩에 의병소를 두고 의암衣岩·진병산에서 적과 접전하였다. 먼저 조인승을 잡아 주살하고 춘천 창의포고문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3백 냥씩을 추렴하고 각지의 의병들과 연락하여 연합전선을 구상하였으나 2월에 이춘영이 전사한 후 각기 흩어져 산진散陣하였다.1907년 7월 춘성군 가정리 여의내골 주산에서 류홍석과 함께 의병 6백여 병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군자금이 없고 탄환이 부족하자 류중악은 자진하여 농우農牛한 필을 팔아 군자금을 제공하고 의연금을 모아 탄약제조를 지원하였다. 그 후 가평 주길리珠吉里에서 일제와 접전하였으나 역부족으로 패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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