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04년(광무 8) 3월 29일에 9품 김규현(金圭鉉)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주임관 5등(奏任官五等)으로 서임(敍任)하는 관고(官誥)이다.
대한제국시기의 관직은 1895년 3월에 반포된 칙령 제57호 '관등봉급령(官等俸給令)'과 칙령 제58호 '서품령(敍品令)'에 의거하여 품계를 칙임관(勅任官, 정1품~종2품), 주임관(奏任官, 3품~6품), 판임관(判任官, 7품~9품)으로 구분하였고, 관등(官等)은 칙임관 1~4등, 주임관 1~6등, 판임관 1~9등으로 구별하였다. 품계와 관등이 구분됨에 따라 임명문서의 명칭도 달리하였는데, 칙임관과 주임관을 임명하는 문서를 관고(官誥)라 하고, 판임관 임명문서는 관첩(官牒)이라 한다.
김규현이 임명받은 중추원의관은 대한제국시기 근대적 형태의 입법기관인 중추원에 소속된 관직으로 등위(等位)에 따라 품계가 달랐다. 1등 의관은 칙임관 3・4등이, 2등 의관은 주임관 1~4등이, 3등 의관은 주임관 5등이 임명되었다. 문서에 따르면 김규현은 중추원의관 주임관 5등에 서임되었기 때문에 이 문서는 주임관을 임명하는 관고임을 알 수 있다.
관고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서두(書頭)에 황제의 명령임을 나타내는 '칙명(勅命)'을 명시한다. 본문은 '모(某)+임(任)+모관(某官)+서(敍)+등급(等級)'으로 구성되는데, 일반적으로 '임(任)' 다음에 관직을 쓰고, '서(敍)' 뒤에는 칙임(勅任), 주임(奏任), 판임(判任)의 등급을 적는다. 수취자의 품계를 올리는 경우에는 '승(陞)'자를 쓰고 뒤이어 임명받는 품계・관직을 적는다. 문서말미에는 문서를 발급한 연(年)・월(月)・일(日)을 기록하고 칙명지보(勅命之寶)를 찍는다.
김규현의 관고를 살펴보면 문서의 첫머리에 '칙명(勅命)'을 기재하였고, 본문에는 9품 김규현을 중추원의관에 임명하고, 주임관 5등으로 서임한다는 내용을 적었다. 발급일자는 '광무8년(光武八年) 3월(三月) 29일(二十九日)'이고, 칙명지보는 연도와 월 사이에 찍었다. 발급일자 좌측에는 중추원의장(中樞院議長) 김가진(金嘉鎭) 선(宣)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발급자를 알 수 있다.
주임관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임명된다. 우선 해당 아문(衙門)의 대신이 관직에 임명받을 사람을 선발하여 총리대신에게 보고하면, 내각에서 가부(可否)를 협의한 뒤 상주(上奏)한다. 이후 황제의 재가(裁可)를 받으면 임명문서를 수취자에게 전달하는데, 이를 선행(宣行) 혹은 선수(宣授)라고 한다. 김규현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 문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