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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박무영(朴無榮) 제문(祭文)
등록번호
00016388
생산일자
1847.05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박무영(朴無榮)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이 문서는 박무영(朴無榮)이 천연두신[痘神]에게 제사 지낸 제문(祭文)이다.
제문의 내용 중 ‘숭정기원후세차사정미오월기묘삭월이십사일임인(崇禎紀元後歲次四丁未五月己卯朔越二十四日壬寅)’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제문의 작성시기는 1847년(헌종 13)인 정축년(丁丑年) 5월이다. 두창은 마마, 손님, 손님마마, 호구별성, 별성 이외에도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마마는 왕이나 왕족에 붙였던 극존칭으로 두창신에 대한 외경심을 표현한 것이다. 호구는 두창신이 집집마다 사람마다 쫓아다니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염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별성(別星)은 사명을 지닌 특별한 객성(客星)을 말한다. 두창을 손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렇게 부른 이유는 중국에서 건너 온 두창이 손님처럼 오래 머무르지 않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호칭을 통해 두창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귀신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두창 역시 두창신이 옮기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두창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민속이 생겨났으며, 특히 두창의 만연 앞에서는 신분 계층을 막론하고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무당에 의존하거나 두창신에 대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16세기에 사족과 일반민들 사이에서 두창신을 얼마나 중히 모셨는가에 대해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천연두에 걸리면 제사, 초상집 출입, 연회, 성생활, 외부 사람, 기름과 꿀, 비린내와 누린내, 더러운 냄새 등을 특히 주의하여 금기했다. 이외에도 꺼리는 바는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를 범하면 열 명 중에 육칠 명은 죽지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목욕하고 빌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창신을 더욱 믿고 따랐다. 심지어 병을 치른 후 한두 해가 지났는데도 조상 제사 지내기를 꺼려했다. 혹시 두창신을 불쾌하게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비라 하는 사람 중에도 아예 조상 제사를 끊은 집도 있었다. 예전에는 두창신에 대한 금기가 이렇지 않았는데, 근년에 들어서 더욱 극성을 부리니, 앞으로 40~5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말했다."라고 하였다.
한편 천연두를 앓고 난 뒤 역시 송두신문(送痘神文)을 짓고 천연두를 낫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천연두신(天然痘神)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짚으로 말 모양을 만들어 두신(痘神)을 강남으로 보내는 행위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송신(送神)이라 하였다.

가로33.8cm, 세로30.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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