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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최광련(崔光鍊) 준호구 (1)
등록번호
00016384
생산일자
1849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춘천부(春川府)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1849년(헌종 15)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西上) 권산리(權山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최광련(崔光鍊)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성격을 가진 문서로 주호(主戶)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며 주호가 신청을 하면 해당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에 의거하여 그 내용을 등서해 발급하였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날짜를 먼저 기재하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한다. 이후로는 주호의 거주지와 가족구성원, 주호와 처의 사조(四祖) 및 소유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한다. 해당 문서도 이러한 기재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주협개인(周挾改印)과 관인(官印), 수결은 있으나 부사를 기재하지 않은 것은 특이한 점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광련은 1781년[신축(辛丑)]생으로 당시 나이는 69세였고 본관은 수성이다. 최광련의 부(父)는 성균생원(成均生員) 최내수(崔乃秀)이고 생부(生父)는 학생(學生) 최내오(崔乃悟)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으로 보아 최광련은 최내수의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친이 동일하고 출생년도와 처의 성씨가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아 1801년의 최한달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1831년 최내수의 준호구에 아들로 등장하던 최광련이 본 준호구에서는 주호가 된 것으로 보아, 아버지 최내수가 1831년에서 1849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祖)는 학생 최준해(崔準海)이고 증조(曾祖)는 학생 최승(崔昇)이다. 외조(外祖)는 통덕랑(通德郞) 권유(權揄)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처(妻) 평강채씨(平康蔡氏)는 사망하였는데, 평강채씨는 1831년 최내수의 준호구에도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 최재성(崔在聲, 36세), 며느리 전주이씨(全州李氏, 38세), 손자 동몽(童蒙) 최하현(崔夏鉉, 11세)이 있다. 1831년의 문서에는 최광련의 첫째 아들 최재문(崔在聞)과 며느리 선산김씨(善山金氏)가 등장하나 해당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호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아우 유학 최광건(崔光鍵, 58세), 제수 동래정씨(東萊鄭氏, 45세), 조카 유학 최재붕(崔在鵬, 23세), 조카 며느리 문화류씨(文化柳氏, 25세), 조카 유학 최재렴(崔在濂, 21세), 조카 사위 유학 이기채(李夔采, 29세)가 있다. 조카사위가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보아 조카 딸도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 아우 유학 최광진(崔光鎭, 53세), 제수 문화류씨(文化柳氏, 53세), 조카 유학 최재기(崔在驥, 31세), 조카 며느리 초계정씨(草溪鄭氏, 33세), 조카 유학 최재선(崔在璿, 22세), 조카 며느리 초계정씨(草溪鄭氏, 23세), 조카 동몽 최표양(崔豹鍚, 19세), 서제(庶弟) 유학 최광회(崔光繪, 26세), 제수 청송심씨(靑松沈氏, 26세)가 함께 거주하였다. 최광건, 최광진, 최광회도 모두 최내수의 아들이나 이전의 문서들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해당 문서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최광련이 소유한 노비는 총 44명으로, 이 중 남자종은 24명, 여자종은 20명이다. 노비들의 출생년도는 모두 기재되었으나 부모 사항에 대해서는 불규칙적으로 기재되었다. 44명의 노비 중 3명은 외방노비이며 이들은 모두 여자종이다. 1명은 광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재되었고 2명은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 기재되지 않았다.

가로58.2cm, 세로88.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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