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일(李普一) 준호구 (1)
- 등록번호
- 00016348
- 생산일자
- 1834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춘천부(春川府)
- 수집처
- 김현식
- 소장자
- 춘천학연구소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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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순조 34)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보일(李普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여덟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6년 뒤에 작성된 아홉 번째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3년을 기준으로 발급되었고 각 가문에서 필요 시에 관청에 신청하였다. 가문에서 신청하면 해당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그 내용을 등서해 발급하였다. 준호구의 형식은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먼저 쓰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하여 주호(主戶)와 처(妻)의 사조, 가족구성 사항, 거느린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하는 방식이었다. 준호구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의 기재 방식은 준호구와 달리 열서(列書)하는 형식이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준호구의 기재 형식이 호구단자와 혼재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해당 문서도 사조와 가족구성 사항에 대해서는 열서(列書)하고 소유한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준호구에는 문서를 발급하고 확인한 관리가 수결을 하고 붉은 인장과 주협개인(周挾改印)을 찍는다. 해당 문서는 인장과 주협개인이 같은 위치에 서로 겹쳐지게 찍은 것이 특징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보일은 1791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4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이보일의 부(父)는 유학(幼學) 이의격(李宜格)이고 조부(祖父)는 학생(學生) 이경춘(李景春)이다. 증조부(曾祖父)는 통덕랑(通德郞) 이덕순(李德順)이고 외조부(外祖父)는 학생 정태섭(鄭台燮)이며 본관은 청산이다. 이보일은 앞선 문서들에서 주호로 기재된 이의격의 둘째 아들로 이의격이 아직 생존중인 것으로 보아 분호(分戶)한 것으로 보인다.
처 풍양조씨(豊壤趙氏)는 1786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9세였다. 부는 학생(學生) 조명동(趙明東)이고 조부는 학생 조경대(趙慶大)이다. 증조부는 학생 조연(趙綖)이고 외조부는 학생 안명담(安命聃)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1837년 이익호(李益祜)의 준호구에 따르면 이익호가 이보일과 풍양조씨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이익호는 이보일과 같은 항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보철(李普喆)에게 입양되었고 해당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다.
소유한 노비는 여자종 2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828년의 준호구에는 여자종 윤섬 1명만 기재되었다. 윤섬은 성씨가 기재되지 않다가 해당 문서에는 류윤섬으로 성씨가 기재되었다. 또한 이보일의 부친인 이의격이 거느리고 있던 남자종 홍운놈이 류윤섬의 남편으로 기재되었다.
가로58.2cm, 세로7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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