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석 초상화
- 등록번호
- 00023825
- 생산일자
- 2019.03.01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신대엽
- 수집처
- 의암류인석기념관
- 소장자
- 의암류인석기념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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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는 춘천문화원 의암류인석기념관에서 2019년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의병) 19명을 선정하여 춘천 거주 신대엽 화백이 전통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류인석柳麟錫
-생몰년도: 1842.01.27.~1915.01.29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62
-훈격: 복장(대통령장)
1895년 8월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호좌창의진의 총대장에 추대되었다. 의암 의병 부대는 제천을 중심으로 충청도·경상도·강원도의 3도가 접경하는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을 연결하는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주요 막료들이 차례로 패망하자 의병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요동으로 떠났다. 1899년 1월 요동으로 들어가 통화현 오도구通化縣 五道溝에 거처를 정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강학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1900년 귀국 후 의암은 황해도 평산과 평안북도 용천·태천·개천 등지에서 강학하였다. 그의 문하에 다시 수많은 인재가 운집하였고 그들 중 일부는 훗날 을사의병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갈 때 할 때 그를 수행하여 해외 독립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1910년 초 연해주 의병 연합체가 형성되자 이범윤·이남기李南基·이상설·정재관鄭在寬의 추대로 13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裁의 직에 올랐다. 이어 '13도 대소동포十三道大小同胞에게 통고'하는 포고문을 발표하여 2천만 국민의 단결과 결사 보국을 호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이상설과 함께 성명회聲鳴會를 결성하고 그 회장으로서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열강정부에 발송하였고, 일본정부에도 항의하는 각서를 보냈다. 1915년에는 봉천성 관전현 방취구寬甸縣 芳翠溝에서 74세를 일기로 타국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복장(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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