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신연강주교(春川新延江舟橋)
신동면 의암리에 설치되었던 신연강 주교(春川新延江舟橋), 일명 배다리
북한강(자양강) 소양강이 만나 한 줄기 큰 강이 된 신연강은 유속과 수심이 깊어 배가 아니면 건너기 어려웠다.
서울과 교역이 많았던 춘천에는 다리 건설이 가장 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다리 건설이 진행된다. 그런데 콘크리트 교량 건설에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이용한다. 그것이 배다리다. 당시 기록을 보면 길이는 107칸 5푼(약 195M), 폭은 2칸(약 3.6M)으로 양쪽 끝 언덕에는 목조로 교각을 세우고 중앙에는 나무배를 교각 삼아 쇠사슬을 엮어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당시 수운 교통이 매우 성행했기 때문에 배가 다니기 위해 다리 중간에 통행을 위한 장치를 만들어 일정 시간 개폐하는 설비를 두었다. 규모나 방식은 다르겠지만 도개교라고 볼 수 있다. 또 배다리라서 폭이 좁고 위험하여 통행하는 사람과 운송수단에 대한 규칙을 제정해서 운영했다. 우선 선교감수(船橋監守)라고 해서 배를 지키고 감독하는 사람이 상주했다. 이 사람이 자동차, 달구지, 마차, 하차 등 규모가 있는 운송수단을 통제하는데 양방향 통행이 안 되기 때문에 먼저 진입한 차가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추월하거나 나란히 가서는 안 되었고, 서행해야 했다. 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이거나 어로행위 등이 금지되었고 위반 시 체포하거나 30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에 처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박이나 뗏목 등이 다녀야 하므로 개폐 시간을 정했는데. 오전 7시에서 9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각 1회씩 여닫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배다리로 설계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었다. 그런데 1924년 대홍수가 일어나면서 배다리 16척이 유실되어 떠내려간다. 불과 3년 2개월을 사용하고 허망하게 유실된 것이다. 당시 신문에서는 “문명의 자랑거리라고 뒤떠들던 신연강 선교는 수만 원씩 들여서 가설한 지 불과 수년에 유실하였다니 비가 아니 올 때만 필요하게 가설하였던 모양이다.”라고 비꼬아 비판하고 있다. 이후 1930년 신연강 철교가 건설된다. <글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 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