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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진병산 전적비
등록번호
00018741
생산일자
1988
생산지역
신동면 증리
생산자
춘천문화원
수집처
춘주문화재
소장자
춘천문화원
내용
진병산 전적비(陳兵山 戰蹟碑)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2리
이곳 금병산은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임으로써 진병산(陳兵山)이라고도 불리는 전적지(戰蹟地)이다.
원호는 명종(明宗) 22년 (1567) 무과에 급제했으며, 선조 25년(15
92) 왜군이 침략해 왔을때, 여주의 신륵사(神勒寺)와 원주(原州)의 구미포(龜尾浦)에서 왜군을 격퇴하고, 이곳에 진을 쳤었으며 김화(金化)전투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여 충장(忠莊)이란 시호(諡號)를 받았다.
또한 19세기말 일제(日帝)의 침략이 본격화될 때 항일 의병(抗日 義兵들이) 이 일대에서 진을 구축함으로써 진병산이란 별명이 더 높아
쳤다. 을미(乙未)(1895) 의병장 이소응(李昭應), 이진응(李晋應), 류홍석(柳弘錫), 홍재구(洪在龜)등의 춘천지방(春川地方) 의병들이 여기를 왕래하였고,.정미(丁未)(1907) 의병때는 이강년(李康秊)의 부대가 순종(純宗) 융희(隆熙) 원년 (1907) 12월 서울 진격작전(進擊作戰)에 나설 때 격전을 펼쳤던 곳이기도 하다. 민족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극복코자 하던 조상의 의지가 모아지고 구국의 행동이 전개되었던 곳임을 결코 잊을 수 없게 한다.『춘주문화재(1988)』 사진,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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