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류인석(毅庵 柳麟錫) 선생의 묘소(墓所)와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구한말(旧韓末) 의병(義兵)의 선구적 지도자(先驅的 指導者)로서 1842년(헌종 8년) 3월 8일 이곳 가정리(柯亭里)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일제의 횡포가 궁중에 미치자(을미사변(乙未事變)) 선생은 8도 창의대장(倡義大將)으로 각처의 의병을 모아 충청, 황해, 평안도와 만주(滿洲) 등지에서 항쟁하는 한편 강원, 경기, 황해, 평안도 일대에서 후진을 위한 애국교육을 실시하였다.
1908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독립운동(獨立運動)의 해외기지(海外基地)를 개척하던 중 13도의군 도총재로 추대되셨고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성명회(聲鳴會) 회장으로서 항일 외교활동을 펼쳤다. 만년에는 만주에서 항일 민족교육(抗日 民族敎育)에 헌신하다가 74세인 1915년 3월 14일 관전현(寬甸縣) 방취구(芳翠溝)에서 애국충의(愛國忠義)의 빛나는 생애를 끝마쳤다.
선생의 유해(遺骸)는 원래 그곳 평정산(平頂山)에 모셨던 것인데 1935년 고향인 남면 가정리로 옮겨 모셨다. 『춘주문화재(1988)』 사진,내용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