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전답주(田畓主)인 류씨(柳氏)의 남자종 나귀(羅貴)가 류씨의 남자종 금복(今卜)에게 토지를 팔면서 내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은 조선시대 주요 재산이었던 토지와 집, 노비, 가축, 각종 집기 등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방매인(放賣人)이 매득인(買得人)에게 준 당대의 계약서이다. 명문의 작성은 일정한 투식을 따르며, 문서에 기재되는 사항은 작성시기와 수취인, 권원(權原)과 거래사유, 거래대상, 지불수단, 본문기의 교부 여부, 추탈담보문언 및 거래참여자에 관한 것이다.
이 문서 역시 명문의 기재요소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서의 작성시기는 광무 8년 11월 12일이고, 거래사유는 '무타절유긴용처(無他切有緊用處)'라고만 적혀있어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전답주가 거래하는 토지를 소유하게 된 사유는 적혀있지 않다. 소재지는 춘천 남산외일작면 사동리 재궁곡 만복동(萬福洞) 시자(詩字) 자호에 제77지번이다. 이 지역은 현재 춘천시 남면 가정리 쟁골 일대에 해당한다.
거래대상은 토지의 크기가 2짐[卜]과 2일경(日耕)인 밭, 4마지기[斗落只], 14배미[夜味]인 논이며, 매매가는 6,900냥이다. 전답의 크기는 소출량, 파종할 때 드는 곡식의 양, 토지의 두렁수, 하루 동안 소 1마리가 경작하는 면적 등으로 표기하는데, 소출량은 짐・뭇으로, 파종량은 마지기로, 두렁수는 배미로, 경작하는 면적은 기일경(幾日耕)으로 토지면적을 나타낸다.
사표는 양전을 할 때 해당 토지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지형지물을 기록하여 표시한 것을 말한다. 문서에는 거래 토지의 사표에 대해 동쪽과 북쪽에 시내가 있고, 남쪽으로는 남자종 관심(官心)의 논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산이 있다고 적혀있다.
거래대상을 매매할 때 새로 작성하는 문서를 신문기(新文記)라 하고, 기존의 권리증빙 문서를 구문기(舊文記) 또는 본문기라고 한다. 방매인은 매득인에게 신문기와 본문기를 모두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 명문에는 본문기 4장과 함께 다른 무엇인가를 함께 주었는데, 문서의 훼손으로 글자가 결락되어 어떤 것을 주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본문의 마지막에는 훗날 만약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알려 잘못되었거나, 사실과 다른 것을 바로 잡을 것이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기재하였다. 이 토지매매에는 거래당사자 이외에 필집으로 이씨(李氏)의 남자종 복돌(福乭)이, 증인으로는 강씨(姜氏)의 남자종 삼봉(三奉)이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