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8년(순조 28)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보일(李普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일곱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6년 뒤에 작성된 여덟 번째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과 그 성격을 같이 하며 신분, 재산의 증명, 노비추쇄할 때 이용되었다. 준호구는 각 가문에서 필요로 할 때 관에 신청하였고 관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을 근간으로 그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해 주었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쓰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한다. 이후에는 주호(主戶)와 처(妻)의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 노비에 대한 내용을 연서(連書)한다. 준호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는 준호구와 달리 그 내용을 열서(列書)한다. 18세기에는 준호구의 기재 형식이 호구단자와 혼용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해당 문서도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대해서는 별행(別行)하여 열서하고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이보일은 1791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38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이보일의 부(父)는 유학(幼學) 이의격(李宜格)이고 조부(祖父)는 학생(學生) 이경춘(李景春)이다. 증조부(曾祖父)는 통덕랑(通德郞) 이덕순(李德順)이고 외조부(外祖父)는 학생 정태섭(鄭台燮)이며 본관은 청산이다. 이보일은 앞선 문서들에서 주호로 기재된 이의격의 둘째 아들로 이의격이 아직 생존중인 것으로 보아 분호(分戶)한 것으로 보인다.
처 풍양조씨(豊壤趙氏)는 1786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3세였다. 부는 학생 조명동(趙明東)이고 조부는 학생 조경대(趙慶大)이다. 증조부는 학생 조연(趙綖)이고 외조부는 학생 안명담(安命聃)이며 본관은 순흥이다.
소유한 노비는 윤섬이라는 여자종 1명이 있다. 윤섬은 앞선 준호구들에서 이의격이 소유한 노비로 기재되었는데 이보일이 분호하면서 윤섬을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인다.